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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6월 2014

[Review] 교회의 역사 속에서 재발견하는 ‘오래된 복음의 미래’ / 전도의 유산, 김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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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가 불가능한 시대에 전도해야 하는 교회?

한국 교회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없는 것일까? 일방적이고 위협적인 복음 전도에 사람들은 얼굴을 돌리고 이기적인 교회의 이중성에 혀를 찬다. 복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서 전하는 일방적인 복음 전도의 방법에 그리스도인조차 회의적이다. 방법만이 문제가 아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복음을 전달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교회 공동체가 더 이상 복음에 대해 이야기할 풍성한 주제와 공동체적 경험을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영혼구원’이라는 명목 아래 ‘내 집을 채우라’는 명령을 따라 열심히 전도하지만, 복음의 풍성한 생명력을 경험하기보다 무력감과 좌절만 자처하고 있다. 교회가 전하는 ‘표피적이고 피상적인 복음’을 외면하는 세상을 향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복음 전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도 교회는 전도를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더불어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전도의 유산을 ‘오래된 복음의 미래’의 관점에서 새롭게 발굴해야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복음의 내용을 그대로 살아내는 공동체 없이 온전한 전도는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복음의 오래된 생명력을 믿으면서도 지난 교회 역사 속에서 빛나는 전도의 유산을 현시대에 새롭게 발굴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공동체적 이해와 실천은 교회의 역사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시대적인 현실과 정황들을 끌어안는 과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복음을 살아내는 대안 공동체인 교회

한국 교회가 복음의 진수보다 전도의 방법론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성경 말씀을 곡해하여 적용했기 때문이다. 전도 관련 구절로 자주 인용하는 성경구절에 대해 저자가 그 본뜻을 친절하게 서술하고 있다. 전도를 영혼구원으로만 축소하여 이해했다. 교회 공동체가 불신자를 교회에 데려와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여 구원의 확신에 이르게 하는 과정으로만 전도를 이해했다. 저자가 보기에 회심의 단계까지 나아가 제자적 헌신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복음 전도는 심각하게 그 정신 자체가 왜곡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에 대한 성경적인 조망을 다시 재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가?”보다 “전도란 무엇인가?” 또는 “복음은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 질문에서 예수와 바울의 전도 이해는 교회 공동체의 전도와 복음에 대한 이해의 근간이 된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고백하고 실천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대안적 사회를 이루어 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이 세상에서 대안적으로 살아가는 일종의 ‘정치적 공동체’인 셈이다. 이런 정치적 소망을 성령 안에서 풍성한 인격적인 교제와 함께 교회 공동체는 이루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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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지음

 

보편 교회의 역사 속 전도의 유산

교회는 지난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 저자는 초대교회 시대, 중세시대, 종교개혁 시대,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간략하게 전도의 역사를 추적한다. 각 시대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전도의 모습들을 통해 전도의 방법론보다 전도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총체적으로 다가갈 것인가는 단순한 방법론적인 고민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남아있는 전도의 유산들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다차원적인 존재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는 전도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면을 수용하면서 복음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전도의 유산은 보편적인 교회의 유산이다. 이 책은 복음의 총제적인 측면들을 잘 보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교회의 역사를 두루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 책에서 모든 기독교 종파의 전도의 유산을 소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켈트 기독교 전통이나 가톨릭의 예수회 영성 등이 전도와 어떤 관련이 있었고 그것이 던져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하나된 보편 교회에 대한 안목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현대의 전도의 원형과 한국 교회의 전도법

한국 교회의 전도 전통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부흥주의 시대의 영향이 크다. 대표적으로 찰스 피니, D. L. 무디, 빌리 그래함 등을 통해 전해진 ‘부훙주의’, ‘결신주의’, ‘즉각주의’라는 특징을 지닌 전도 모델이 영향을 주었다. 대중 전도를 표방하는 이 시대의 전도 방법은 최대한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복음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메시지가 전해지는 자리에서 회심의 결단을 요청하는 방법이라는 기본적인 구도를 갖고 있다. 이 시대의 복음 전도는 하나의 기획에 의해 복음을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잘 짜인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었다. 일시적인 이벤트적 전도 방법론은 모두 이 시대의 형향이라고 볼 수 있다. 고객감동 방식의 비즈니스적인 전도 집회가 여전히 성행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볼 때, 전도의 역사적인 유산을 반추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시대가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해서 복음에 대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응답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은 중요한 차별적인 지점이다.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 없이 믿음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전도와 ‘오래된 복음의 미래’

현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부른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어떻게 규정하는 것과 관계없이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이른바 ‘변화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복음’을 규정하는 또 다른 말이 ‘오래된 복음의 미래’라는 말이다. 이것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오히려 고대의 영성과 초대교회의 방법론들이 적합성이 높다는 이해에서 비롯된다. 근대의 논리적이고 자율적이며 개인주의적인 복음에 대한 이해를 넘어, 이제 복음을 ‘공동체의 인격적인 이야기’로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지식과 논리에 정합성을 논쟁하여 증명하는 방식의 전도가 여전히 유효하긴 하다. 하지만 점점 사람들은 논리보다는 메신저와 메시지의 통합적인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일방향적이고 일률적인 메시지 전달방법에서 상황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의 접근을 선호하는 편이 되었다.

한국 교회의 미래를 고민하려면 전도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한 대학의 동아리에서 전도를 거부하는 카드를 만들어 배포했던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그것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는 뜻에서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시대적인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자기중심적인 전도를 강요하는 패러다임을 고수할 때, 복음은 더 거절당하고 말 것이다. 한 번의 결단에 초점이 맞춰진 전도가 아니라, ‘신앙 형성(faith formation)’에 집중해야 한다. 장기간의 제자적인 삶 가운데서의 회심과 삶의 변화를 공유하려면 공동체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전도의 유산을 새롭게 조명하는 일은 복음의 공동체적 재발견을 부추기는 일이기도 하다. ‘오래된 복음’의 생명력을 교회 공동체가 공유하고 살아냄으로서 이 시대에 감동을 주는 복음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실제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책들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대안’을 고민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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